Grey Gravestone RIP October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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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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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 reitet so spät durch Nacht und Wind?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 어두운 밤에 말 타고 가는 이 누구인가?

 

 

Es ist der Vater mit seinem Kind;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이었다네.

 

 

Er hat den Knaben wohl in dem Arm,

아버지는 아들을 감싸 안고 간다네

 

 

Er faßt ihn sicher, er hält ihn warm.

안전하고 따뜻하게 안고 말을 달린다네

 

 

"Mein Sohn, was birgst du so bang dein Gesicht?"

"아들아, 왜 그렇게 떨고 있느냐?"

 

 

"Siehst, Vater, du den Erlkönig nicht?

"아버지, 저기에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Den Erlenkönig mit Kron' und Schweif?"

금관을 쓰고, 망토를 두른 마왕이?"

 

 

"Mein Sohn, es ist ein Nebelstreif."

"아들아, 저건 그냥 자욱한 안개일 뿐이란다."

 

 

우리가보이잖아함께놀자못보는척하지마싫어함께해너도이렇게되기싫었어죽어버려어째서살아있어같은기운이야싫어같이있어우리랑놀아내목소리가들리잖아죽여버릴거야살려줘죽기싫어여기로와왜내말을들어주지않는거야아무도나를싫어죽어버려뒤지라고뒈져버려개같은년네눈을뽑아버릴거야그렇게처다보지말고함께놀아달라고몇번을말해싫어싫어싫어죽기싫었어나도이렇게되고싶지않아그러니너도죽어버려네몸을나한테줘나도살고싶어싫다면네가나대신죽어버리라고살려줘싫어싫어싫그만안돼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

 

 

"Mein Vater, mein Vater, und hörest du nicht,

"아버지! 마왕의 이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Was Erlenkönig mir leise verspricht?"

마왕이 내게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Sei ruhig, bleibe ruhig, mein Kind,

"진정해라, 아들아. 걱정 말거라,

 

 

In dürren Blättern säuselt der Wind."

저건 마른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뿐이란다."

 

귀신같은 건 없어. 네가 착각 하는 거야. 알겠니, 미루? 대답해! 어서!

...잘,못 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용서해주세요...

엄마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까. 미루,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싫어! 싫어요, 잘못했어요, 어머니... 용서해주세요, 제발...!

 

 

 

쿵.

 

 

 

목재로 된 장롱문이 닫힌다. 빛 한 조각 들어올 틈도 없는 완연한 어둠이다. 3자 남짓한 공간을 가득 메우는 공포에 잠겨 메말라가는 한 여자아이가 있다. 두려움을 먹고 자라난 그것들은 어둠 속에서 더욱 활기를 띄더니, 즐겁다는 듯 저들끼리 속살댄다. 아이는 내내 무릎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든다. 눈물로 얼룩진 어리숙한 얼굴이 희미하게 비친다. 그리고-

 

 

 

 

 

Attacca, Subitto forte.

 

 

 

 

 

직전보다는 조금 자란, 그러나 여전히 어린 듯한 얼굴이 보인다. 한 때 푸르른 녹음과도 같았을 두 눈에는 공포보다 더욱 짙은 체념이 담겨있다. 본인이 겪은 상황에 꽤 놀란 건지, 가늘게 떨리는 두 손을 움켜쥐고 건반이 덮인 피아노를 바라본다. 그 어떤 낌새도 없이 순식간에 건반 덮개가 내려왔다. 오래된 피아노라 안전장치가 없음을 감안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속도다. 가볍게 기분 전환이라도 할까 싶어 음악실에 들어온 것이 화근이다. '그것'들이 있는 한, 기분 전환 따위가 가능할 리가 없잖아. 자조적인 웃음을 한 번 내뱉고는 의자에서 일어난다. 이 정도로 반응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언짢은 티를 내면, 반드시 파고들어 올 테니까. 아주 작은 틈일지라도... 음악실을 나서기 전, 먼지가 소복이 쌓인 피아노 상판을 한 번 돌아본다. 가운데 페달은 고장 나고, 옆판의 이음새는 벌어지고, 튜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음정은 죄다 엉망이고, 현이 끊어진 건지 건반 몇 개는 눌리지도 않는다. 헐값에도 팔릴까 말까 할 정도로 낡고 허름한 피아노. 어디 그뿐일까, 학교에서 사용하는 공용 피아노인 만큼 수 십, 어쩌면 수 백 명의 학생의 손을 거쳐 갔겠지.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이런 물건에 손을 대는 행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오늘은 그저... 그래, 변덕이었을 뿐이다. 혼자 음악실에 들어온 것도, 저런 허접한 피아노를 건드린 것도, 좋아하지도 않는 빠른 템포의 곡을 친 것도, 전부. 그리고 그 변덕의 결과는...

 

 

잠시 시선을 머무르던 미루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음악실을 벗어난다. 씁쓸한 교훈이다.

 

 

 

 

.

 

 

 

.

 

 

 

.

 

 

 

 

나는 외로웠다. 그래서 편지를 썼고 답장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삐- 삐- 삐-

 

 

탁.

 

 

 

9시를 알리는 알림이 울린다. 벌써 두 시간이 지났네, 이렇게 오래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읽고 있던 페이지 사이에 작은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자, 책머리 위로 검은 장미가 고개를 내민다. 미루는 책상 한 켠에 대충 책을 올려두고는 방을 나섰다.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니니 저녁은 차로 대충 해결할 생각이었다. 오늘은... 응, 캐모마일 티가 좋겠어. 두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이어 활자를 읽은 게 꽤 타격이었는지 눈이 따끔거렸다. 피로한 눈을 꾹꾹 누르며 원목 계단을 딛고 내려가자 화려한 샹들리에가 미루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 아래, 거실 한 가운데 놓인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잡힌다. 아, 문득 낮에 미처 완성하지 못한 악곡이 생각난 미루는 저도 모르게 피아노를 향해 다가갔다. 시간이 늦긴 하지만... 차분한 곡이라면 괜찮아, 방음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야 소음 공해든 아니든 하겠지... 미루는 한 손으로 선반을 가볍게 쓸어본다.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한 원목 표면이 샹들리에의 빛을 반사해 반질거린다. 가죽 의자에 앉아 건반을 몇 번 두드리니 청아한 소리가 울린다. 아주 잠시, 작은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표정에서 지워낸 미루가 연주를 위해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는다. 양손이 흰 건반 위로 올라가고, 소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료할 때의 미루는 종종 건반을 잡는다. 집을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사용인 또한 이를 알고 있기에 피아노는 여타 사물들에 비해 유독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완벽하게 조율된 피아노가 내뱉는 수려한 음색만이, 이 무채색의 집에서 미루를 달랜다. 오직 이 시간만이 그녀의 공허를 절반이나마 메운다. 낮의 한 때를 떠올린다. 조율은 엉망진창, 주요 현 세 개가 끊어져 소리는 먹히고, 상판에는 얼룩덜룩 먼지 자국 가득한 저가형 피아노, 내내 삐걱이다 끝맺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연주. 흠 없는 조율, 적절한 온습도로 유지되는 공간, 매번 쓸고 닦아 모자란 곳 없이 반짝이는 원목, 못 해도 300만엔은 호가할 최고급 그랜드 피아노. 그래, 니시하라 미루에게는 이런 게 어울린다. 어느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우아하고, 가식적인... 

 

초겨울의 호수를 자아내는 단조로운 음이 손등을 타고 흐르며 중후반부에 접어든다. 미루의 정신이 온전히 건반 위로 쏠리려던 그때, 

 

 

 

 

 

 

"잘 치네, 미루."

 

 

 

 

 

 

 

 

그 남자다.

 

 

 

 

 

 

 

 

...언제?

 

 

 

 

쿵.

 

 

쿵.

 

 

쿵.

 

 

 

 

역치를 웃도는 감각에 되려 어떤 반응도 내보이지 못하고 굳는다. 전신의 피는 역류하고, 건반을 가벼이 두드리던 손가락은 차게 식어버린다. 온몸의 감각은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날카로이 곤두선다. 목덜미가 서늘했다. 왜, 왜? 갑자기, 어째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어. 한동안 오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오늘도—

 

 

 

"응? 계속해도 돼. 신경 쓰지 마."

 

 

 

도화선에 불을 붙인 듯, 쿄우야의 나긋한 음성을 기점으로 딱딱히 굳어있던 미루의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미약한 떨림은 점점 세기를 더해가고, 육안으로 그 모습이 관찰될 정도로 완전해진다. 그 모습을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보던 쿄우야는 싱긋 웃어 보이며 예의 그 다정한 음색으로 말을 건다. 긴장했구나. 차마 뒤 한 번 돌아보지 못하고 벌벌 떠는 미루의 등을 몇 번 가볍게 쓸어내린다. 닿아오는 차디찬 감촉에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고 만다. 그러한 행동에 오히려 더욱 긴장한 정신과는 달리 상냥을 모방하는 태도에 몸은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역겹게도.

 

 

 

"괜찮다면 한 곡 쳐주지 않을래? 예를 들면... 그래, 녹턴 2번이라거나."

 

 

 

싫어, 내가 왜...! 격한 부정이 혀끝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어떤 태도로 돌변할지 알 수 없었다. 현재로서는 적당히 맞춰주는 게 최선이다, 생각한 미루는 망설이다 건반에 손을 올렸다.

 

 

 

 

 

 

 

부드러운 선율이 한밤중의 회장을 메운다. 커튼이 미처 가리지 못한 창의 틈새로 그믐달이 여린 빛을 내비치고, 그 사이로 음표만이 공중에 떠다닌다. 반복되는 흑백 직선들을 가로질러 이리저리 손가락을 놀리는 미루의 등 뒤로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 물건의 가치를 가늠하는 듯한, 그 기분 나쁜 얼굴이겠지. 미루는 무의식적으로 힐끔 쿄우야를 쳐다 보았다.

 

 

!

 

 

연주가 끊긴다. 건반을 누르던 손가락은 움츠러들어 주먹을 말아쥐는 모양새를 한다. 그가 분명 말하지 않았는가, 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그렇지만 연주를 듣는 그의 얼굴이, 그러니까, 마치... 당장이라도 내 목을 움켜쥘 듯한 표정이라서... 미루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금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왜? 계속해."

 

 

 

싸늘한 얼굴과 다르게 평이한 어조에 목덜미가 오싹했다. 본능적으로 그의 심기가 비틀리기 직전이라는 걸 느낀 미루는 다시 허둥지둥 연주를 이어 나갔다. poco rubato, 약간 빠르게. 가속할 필요는 없다. 주인의 불안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연주는 이미 충분히 조급히 이어져 온 상태였으니까. 직전까지 다소 성급하게 들리던 음악은 중반부를 거치자 그제서야 걸맞은 템포를 갖고 울린다.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던 연주는 4화음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뒤이어 느릿한 박수 소리가 공간의 정적을 깬다.

 

 

 

"근사해. 아니, 훌륭하다고 해야겠네."

 

 

 

박수를 치는 쿄우야는 드물게도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입꼬리만 비죽 끌어올린 평소의 거짓 웃음이 아닌, 눈가가 얕게 접힐 정도로 웃고 있었다. 꽤나 긍정적인 반응이 분명했다. 허나 어째서일까, 미루가 느끼는 이 감정은 오히려 불안에 가까울 테다. 그런데 중간에 틀린 게 있어. 몇 번의 박수 이후 가죽 의자에 앉아있는 미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감에 미루의 몸이 다시금 굳어왔다. 그런 상대방의 상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루의 등 뒤에서 팔을 뻗어 그녀의 양손을 자신의 것으로 감쌌다. 손등에 느껴지는 버석한 촉감에 미루의 동공이 일순 확장된다. 겹쳐진 손가락으로 직접 건반을 하나하나 누르며, 미루의 오류를 바로 잡는다. 도입부에서는 파와 솔이 8분음표 한 번씩인 게 맞지만... 이후에 유사하게 반복되는 부분은 두 번씩 짧게, 연속으로 이어져. 쿄우야는 자신의 것과 맞닿아있는 미루의 손가락을 직접 이리저리 움직이며 몇 번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한 번 해볼래? 손은 거두어져 목과 어깨 그 사이 어딘가의 허공에 떠 있다, 여전히 양 팔은 미루의 어깨에 가볍게 걸쳐진 채. 속이 울렁거린다. 직전까지 제 손등에 닿아오던 건조한 피부, 어깨에 느껴지는 가벼운 무게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의 무게... 의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눈을 감고 잠시 망설이던 미루는 건반에 손을 올려 힘없이 쿄우야의 행동을 복기했다.

 

 

 

"응, 잘했어."

 

 

 

만족스러운 듯 옅게 웃어 보이고는 왼손으로 미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쾌함에 미루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쳐냈다. 미루의 반항적인 행동에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만 작게 끌어올려 웃는다. 아, 또 저 얼굴이다. 가소로워하는, 상대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미루의 눈에 불안이 일렁거린다. 쿄우야는 미루에게 몸을 기울이고는, 자신을 내쳤던 손을 붙잡는다. 예기치 못한 행위에 미루의 몸이 가늘게 떨리게 시작했다. 그런 미루의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다, 피식대며 실없는 조소를 뱉어냈다. 왜 긴장하고 그래. 그나저나... 미루는 손이 작구나. 느긋한 움직임으로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길게 뻗은 손가락은 손등을 문지르다, 손목을 더듬고는 손바닥을 향했다.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냉랭한 감촉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쿄우야는 몇 차례 손바닥을 지분대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껴왔다.

 

 

 

"봐, 차이가 크지 않아?"

 

 

 

쿄우야의 말마따나 두 손은 대략 한 마디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분명 미루의 손이 작은 편은 아닌데도, 고등학생 평균을 웃도는 쿄우야의 것과 붙어있으니 한없이 조그맣게 느껴졌다. 하지만 미루는 지금 그런 걸 의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저 쿄우야의 의중을 가늠하려고 애쓸 뿐. 허나 차마 고개를 들어 쿄우야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또 다시, 이전의 그 얼굴을 하고 있을까 봐, 당장이라도 없애버리고 싶다는 눈으로 보고 있을까 봐...

 

 

 

"손이 작은 사람들은 피아노를 잘 못 친다던데... 미루 너는 예외인가 봐, 그렇지?"

 

"이거, 놔..."

 

 

 

맞잡힌 손을 빼내려고 애써 보지만, 그에 상응하듯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힘을 주어 잡는 탓에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력한 자신의 모습에 또 다시 옅은 혐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했다.

 

 

 

"...피아노. 아, 그래. 피아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우리."

 

"..."

 

"클래식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야. 그 중에서도 녹턴 2번을 제일 좋아했고. 피아노를 잘 치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곡은, 듣기만 해도 어디가 틀렸는지 정도는 알 수 있어. 그만큼 많이 들었으니까."

 

"..."

 

"...좋아했는데."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직전까지는 그럭저럭 기분 좋아 보이던 목소리가 음산하게 깔렸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어둑어둑하게 얼룩진 눈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급변한 태도에 위험을 감지한 미루는 온 힘을 다해 손을 빼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윽고 오른쪽 손목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미루의 손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났음을 깨달은 쿄우야가 억세게 거머쥔 탓이었다. 미루의 미간이 작게 찌푸려졌다. 아...! 조그마한 신음소리로 아프다는 티를 냈는데도 불구하고 쥐어오는 힘은 줄어들긴 커녕, 손목을 빼내고자 시도하면 할 수록 거세질 뿐이었다. 쿄우야는 작게 비틀린 웃음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정말 좋아했어. 늘 틀어놓고 잠이 들 정도로. 그래서 그런가, 그만큼 아쉬움이 커."

 

"놔,줘... 아파...!"

 

"전날 밤에 턴테이블이 고장 나는 바람에 듣지 못했거든."

 

"..."

 

"그래, 네 어머니가 나를 죽였던 날. 하필이면, 그 전 날에 고장이 나서."

 

 

 

손목을 잡는 힘이 점점 막강해졌다. 으스러질 듯한 고통에 저도 모르게 눈가에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아팠다. 어째서, 왜,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었잖아. 왜, 갑자기...!

 

 

 

"지금 생각하니까 후회되네. 그때는 떠오르지도 않았는데..."

 

"아, 흐윽... 윽..."

 

"미루는 손목이 꽤 가는 편이네. 이건 네 어머니를 닮았겠지."

 

 

 

말을 끝낸 쿄우야의 입가가 굳었다. 그와 동시에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통증이 미루를 덮쳐온다. 아, 아파, 아파... 아프다고, 싫어, 아파... 하지마, 놔줘, 제발...! 간절하게 비는 미루를 무감각한 눈으로 쳐다보며, 일말의 미련 없이 강하게 움켜쥐었다. 잠,깐—

 

 

 

 

우두득-

 

 

 

 

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선명했다. 동시에 날카로운 비명이 거실에 울려 퍼진다.

 

 

 

 

아, 윽, 아파. 아파, 아아... 아파... 아아아아아...

 

형용할 수 없는 아픔에 눈물이 죽죽 새어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신음은 문장 하나조차 제대로 끝맺음 내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마치 언어 체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미루를 보고 나서야 그를 놓아준다. 몸을 둥글게 움츠린 미루는 다친 손목을 차마 부여잡지도 못하고 덜덜 떨었다. 아팠다, 아파, 너무 아파, 살려줘... 어쩌면 부러졌을 지도 몰랐다. 의식이 온전치 않은 미루 위로 푸핫,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쳐들자, 정말 기쁘다는 듯 웃는 쿄우야가 있었다. 울음 범벅인 얼굴을 마주하자 더욱 크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하하, 아하하하.아하하하하하!

 

 

 

"흐윽, 아...왜, 아파, 윽....아아..."

 

"푸흣, 아하하... 아,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고마워, 미루."

 

 

 

쿄우야가 입가를 매만지며 웃음기를 흐렸다. 왜, 어째서? 웃는 거야, 그렇게... 나는, 아픈, 이렇게...! 분노, 악의, 좌절, 원망, 슬픔, 미움, 열등감... 아, 모르겠어. 부적인 감정을 담아 쿄우야를 노려본다. 얼굴이 온통 절망으로 물들어있는 미루를 보고는, 다시금 웃음이 피실 피실 새어 나오는 듯했다. 아하하, 좋아, 그 얼굴이야. 오늘따라 더 마음에 드네. 즐거워. 어때? 내가 방금 네 손목을 끊었어. 어쩌면 단순히 골절된 게 아니라 완전히 으스러졌을지도 몰라. 네가 병원에 갈 때 즈음, 손목을 온전히 붙게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릴 지도 모르겠고. 있잖아, 미루. 가능하다면 나는... 네 뼈를 부러트리고, 살점을 뭉개고, 인대를 끊고, 혈관을 자르고 싶어. 네 맥박을 멈춰내고 싶어. 네 숨통을 틀어쥐고는 호흡 한 가닥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하고 싶어. 응, 그래.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꼭두각시 말야. 손목을 쓰지 못 하는 너는, 유일한 안식인 피아노를 잃겠구나. 응, 기뻐. 내가 네 모든 희망을 끊어내는 거야. 다시 피어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전부 짓밟아버리고, 그 모든 곳을 오롯이 내가 차지하고 싶어...

 

 

 

 

 

창백한 얼굴로부터 뺨을 타고 흐르는 그것은,

 

 

 

 

 

황홀이었다.


 

 

 

 

 

 

© h1Mek♡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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