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y Gravestone RIP October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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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나뭇가지 사이사이 올라가 가지를 반짝이는 작은 전구들, 사람들의 머리 위에 걸린 오색찬란 가랜드,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다가오는 2013 새해에 대한 기대로 모두가 들떠있는 12월 31일. 길가를 가득 메우는 수많은 사람 중 누군가는 새해의 희망을, 누군가는 현재의 즐거움을, 누군가는 지나갈 올해의 미련을 말한다.

 

연말연시 분위기로 잔뜩 젖어있는 거리에서 벗어나 도심 외곽에 위치한 한 집에 도착한다. 철제 대문과 잘 가꾸어진 잔디밭을 지나 문을 열면, 번화가 만큼 화려하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이다. 그리고 상아색 대리석 식탁 위에 놓인,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 눈밭과도 같은 그 케이크 위로 작은 초콜릿 몇 개가 올라가 있다. 장식 없이 평평한 부분들에 나누어 꽂힌 다섯 개의 초. 미형의 여인이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적린을 긋고, 심지에 불을 올린다. 앞에 앉은 조그마한 아이는 손가락을 꼼질대며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케이크를 바라본다.

 

두 손으로 세기엔 부족한 나이의 아이에게는 처음 겪는 생일 케이크가, 엄격한 감시하에 몇 번 먹어보지도 못 한 케이크가 분명 탐스러울 테다. 그것이 고작 자기 얼굴을 가릴까 말까 한 조그마한 크기더라도 말이다. 기대감 어린 눈을 빛내던 아이는 허락을 구하는 듯, 우물쭈물하며 옆에 앉은 어머니를 쳐다본다. 아이의 시선을 느낀 여자는 작게 미소 짓고는, 몸을 일으켜 식탁 주위를 빛내던 전등을 끈다. 공간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가득 차고, 여린 잎새와도 같은 눈에는 작게 일렁이는 촛불만이 유일하게 비친다. 하나, 둘-

 

 

 

해피 바스 데이 투 유-

 

해피 바스 데이 투 유-

 

해피 바스 데이 미이루-

 

해피 바스 데이 투 유-

 

 

 

소원 빌고, 후- 불어. 어머니의 말에 아이는 소원을 미리 생각해두지 못했는지, 그제야 깨달은 듯 놀란 눈을 한다. 눈을 꼭 감고, 둥둥 떠다니는 여러 소원 중 단 하나를 건져 생일을 이유로 빌어본다. 촛농이 녹아 케이크 위로 완전히 흘러내리기 직전에,

 

 

후-

 

후우-

 

 

한 번에 끄기에는 숨이 모자랐는지, 두 번에 나누어 미약한 불길을 꺼트린다. 보조등이 켜짐과 동시에, 펑- 하며 터지는 작은 폭죽. 순간적으로 생기는 시끄러운 소음에 여자는 짐짓 표정을 찌푸렸다, 이내 지워낸다. 공중에 흩날리던 꽃가루 중 일부는 흰 케이크 위에 내려앉는다. 생일 축하해, 미루. 아이를 향해 작게 미소 지은 여자는 폭죽 잔해를 한 쪽에 치워놓고, 케이크를 덜기 위한 식기 도구를 가지러 주방으로 향한다. 아이는 조막만 한 손으로 자신에게 씌워진 고깔모자를 벗기 위해 애쓴다. 이 조그마한 머릿속에 단시간에 떠오른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도...

 

 

내년에는 아빠도 같이 있게 해주세요...

 

 

 

 

 


 

 

 

 

 

 

깜빡, 깜빡. 

 

 

 

눈꺼풀이 올라가고 녹빛 눈동자가 드러난다. ...깜빡 잠들었네. 막 잠에서 깨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난 미루는 대충 오후 4시 정도 되었겠거니 싶어 커튼을 걷어 창밖을 확인했다. 그러나 해는 커녕, 달 끄트머리도 겨우 보일까 말까 한 어둠뿐이다. 분명 오후가 아니라 차라리 밤에 가까운 시간일 테다. 방학이라는 이유로 종일 방에 앉아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시간 감각이 조금 무뎌진 듯했다. 웅크린 자세로 쪽잠을 잔 탓에 몸 일부가 불편해 가볍게 스트레을 하며 거실로 향했다. 무의식적인 과정이었으나, 막상 내려오니 갈증이 느껴져 물이라도 마셔야겠다며 주방의 보조등을 켰다. 물병과 대충 놓여있던 유리잔을 집어 들어 냉수 한 잔을 들이키고 나니, 그제야 조리대 끝에 놓인 무언가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크라프트지로 된 정사각형의 상자. 탁자에 유리잔을 내려놓고 그것을 향해 다가가 덮개를 열자 안에는,

 

 

"...케이크?"

 

 

곳곳에 생과일이 올라간, 커다란 초코케이크가 들어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12월 31일. 내 생일이구나. 그렇지만... 누구지. 내 생일을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이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기사 아저씨는 아니겠지, 응. 아무래도 집 청소를 맡은 사용인 아주머니가 두고 가신 듯했다. 내가 오늘이 생일이라고 말씀드린 적 있던가. 어쩌다 알게 되신 것도 무리는 아니지, 정말 오래 하셨으니까... 미루는 포크를 챙기고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단 건 싫어하지만... 그래도 선물이니까. 측면을 조심스럽게 찍어 입에 넣었다. 가장 먼저 인공적인 합성 코코아 향이 코를 강하게 찌르고, 뒤이어 끔찍할 정도로 단 맛이 느껴졌다. 크림은 부드럽게 녹기는 커녕 단단하게 덩어리져 미끌미끌 혀 위를 굴러다니고, 빵은 물기 하나 없이 퍽퍽했다. 저품질의 재료만을 사용해, 단 맛으로 포장하려고 설탕을 잔뜩 들이부은 대형 마트 싸구려 케이크가 분명했다. 고작 한 입이었을 뿐인데 삼키기도 힘든 역겨운 맛에 포크를 내려놓았다. 겨우 삼켜낸 미루는 한참을 케이크 판을 바라보다, 그것을 집어 들어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욱여넣었다. 직전까지 그럴싸한 모양새를 보이던 케이크는 철판에 닿자 처참히 뭉개진다. 덩어리가 남아있는 케이크 판을 싱크대에 대충 던져놓고 손을 씻었다. 철판 위에 버려진 케이크에 흐르는 물이 닿자 생크림이 떨어져 나가는 모양새가 퍽 역겨웠다. 괜히 비위가 상하는 기분에 고개를 돌려 손을 털어내며 생각한다. 아무도 축하하지 않아.

그렇지만, 그래도...

 

 

 

 

 

 

 

...생일 축하해, 니시하라.

 

생일 축하해, 미루. 나름 네 생각 해서 사 온 건데, 초콜릿 맛은 별로인가 보네. 다음번에는... 응, 녹차가 좋겠어.

 

 

 

 

 

 

 

 

 

 

© h1Mek♡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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